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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JoyFul Weekend

제5화. 밀키 길들이기: 털과의 전쟁과 ‘꿀밤’의 딜레마

작성자 mise2004 · 12월 4, 2025

터키시 앙고라. 우아하고 기품 있는 긴 털을 가진 고양이.

…라고 책에는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 집 거실은 서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바람이 불면 하얀 털 뭉치들이 회전초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으악! 여보! 밀키 엉덩이에 또…!”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 비명이 터졌다. 긴 털의 비극이랄까. 화장실을 다녀온 밀키의 엉덩이 털에 ‘맛동산(변)’ 조각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다. 녀석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아하게 거실을 가로지르려 하고, 나는 물티슈를 뽑아 들고 녀석의 뒤를 쫓는다.

“밀키! 서! 거기 서라고! 그거 묻히고 앉으면 안 돼!”

한바탕 추격전 끝에 겨우 뒤처리를 하고 나면, 이미 내 검은 정장 바지는 하얀 털 코팅이 완료된 상태다. ‘돌돌이(테이프 클리너)’로 미친 듯이 문지르고 집을 나선다.

회사 사무실.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 먹여 살리고, 밀키 사료값 벌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타다닥, 타다닥.

그런데 자꾸만 시야에 거슬리는 무언가가 있다. 내 오른쪽 검지 손톱 끝. 거기에 하얗고 가느다란 밀키의 털 한 가닥이 끈질기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키보드를 칠 때마다 그 털은 아주 격렬하게 좌우로 흔들흔들 춤을 춘다.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 같다.

‘이봐 집사 양반, 여기 회사라고 방심했나? 난 언제 어디서나 너와 함께야. 훗.’

손톱 끝에서 촐싹대는 그 털을 떼어내며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 이것이 집사의 숙명인가. 내 영혼까지 털에 잠식당한 기분이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이번엔 ‘이갈이’ 전쟁이다. 아기 고양이인 밀키는 요즘 눈에 보이는 건 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껌은 바로… 내 손이다.

“아얏! 야! 아빠 아프다고!”

밀키가 내 팔뚝을 앞발로 꽉 잡고 뒷발차기를 하며 앙! 물었다. 날카로운 유치가 살을 파고든다. 원래 엄마 고양이가 있으면 형제들끼리 놀면서 “아, 세게 물면 아프구나”를 배운다는데, 우리 밀키는 외동이라 조절을 모른다.

이대로 두면 맹수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래, 훈육이 필요해. 서열 정리를 확실히 해야겠어.’

밀키가 내 발목을 사냥감인 양 덮친 순간, 나는 검지를 펴서 녀석의 이마를 딱! 때렸다. 일명 ‘꿀밤’ 요법.

“팡! 안 돼! 물면 안 돼!”

밀키가 깜짝 놀라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뒷걸음질 쳤다. “히잉…” 하는 듯한 표정으로 귀를 축 늘어뜨리고 나를 올려다본다.

아… 저 표정.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너무 심했나? 아직 아기인데? 쟤가 뭘 안다고 때렸지? 나는 쓰레기야!

3초 만에 무너진 나는 잽싸게 찬장에서 고양이용 츄르(간식)를 꺼냈다.

“오구오구, 밀키야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많이 놀랐지? 이거 먹고 화 풀어, 응?”

밀키를 품에 안고 싹싹 빌며 간식을 바쳤다. 녀석은 언제 놀랐냐는 듯 내 손가락까지 핥아먹으며 골골송을 부른다.

잠깐,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물었다 -> 꿀밤을 맞았다 -> 근데 갑자기 맛있는 걸 준다?’

혹시 밀키는 내 훈육을 ‘아주 큰 고양이(나)가 힘자랑 한번 하고 공물(간식)을 바치는 의식’ 정도로 이해한 건 아닐까?

방금 간식을 다 먹은 밀키가 입맛을 다시며 내 허벅지를 또 앙! 깨문다.

“악!! 야!!”

오늘도 나의 전투력은 상승하지만, 승률은 0%에 수렴한다. 밀키야, 제발 말로 할 때 알아들어 주라. 아빠 꿀밤 때리고 우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제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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