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라곤 보기 힘든 남쪽 나라 촌놈들, 큰맘 먹고 북쪽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지원해 준 용인 소재 콘도 숙박권과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덕분에 급하게 잡힌 1박 2일의 짧은 가족 여행이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집에 홀로 남겨질 막내 ‘밀키’뿐이었다.
“1박 2일 정도는 괜찮겠지? 자동 급식기랑 물그릇 넉넉히 채워뒀으니까.”
“그래,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니까 낯선 곳에 데려가는 것보단 집에 두는 게 낫대.”
아내 혜정이와 애써 서로를 위로하며 출발했지만, 내심 기대하는 바가 따로 있었다. 바로 ‘눈’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선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함박눈을 위쪽 동네에선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몰라 트렁크 깊숙이 박혀있던 스노우 체인까지 꺼내 실었다.
하지만 웬걸.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하늘은 잔뜩 흐려지더니, 기대했던 하얀 눈 대신 차가운 겨울비만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에이, 김샜네. 눈싸움하고 싶었는데.”
뒷좌석에서 준이와 애몽이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체인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트렁크 신세가 되었다. 나도 아쉬웠지만, “그래도 빗길이라 운전은 덜 위험하잖아? 비 오는 놀이동산도 운치 있고 좋지 뭐!” 하며 애써 긍정 회로를 돌렸다.
비록 눈은 못 봤지만, 비 오는 놀이동산은 우리 세상이었다. 사람이 적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우비를 입고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먼저 준이와 애몽이가 꽂힌 건 ‘트위스트‘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판 위에서 의자가 또 제멋대로 돌아가는,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나는 기구였다. 무려 연속 3번이나 끌려가서 탔더니, 내리고 나선 하늘이 노랗게 돌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쉴 틈 없이 이어진 ‘뒤로 가는 열차‘는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이었고, 마지막으로 탄 ‘로데오‘는 인간 세탁기 수준이었다. 비 오는 하늘을 향해 거꾸로 매달려 소리를 지르는데,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광란의 질주를 마치고 나니 배가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비도 피할 겸 식당으로 들어갔다. 놀이공원 음식이라 큰 기대 안 했는데, 웬걸? 얼큰하게 끓여낸 김치찌개와 바삭바삭한 돈까스가 전문점 뺨치게 맛있었다.
이 완벽한 메뉴에 술이 빠질 수 없지. 나와 혜정이는 생맥주 500cc 두 잔을 시켰다.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쫘악~’ 들이키는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그 청량함이란! 캬, 이 맛에 돈 벌지 싶었다. 빗속에서 놀이기구 타느라 쌓인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비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못 탄) 아쉬움을 뒤로한 채 들른 기념품 숍에서 준이는 듬직한 판다 인형을, 애몽이는 멍한 표정의 카피바라 인형을 품에 안았다.
주토피아와 사파리 월드도 즐거웠다. 판다와 랫서팬더는 인형처럼 귀여웠고(밀키 뒷모습이랑 닮아서 더 눈길이 갔다), 사파리 맹수들의 위엄은 대단했다. “호랑이 앞발 한 방이면 800kg의 충격”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문득 집에 있는 밀키의 말랑한 핑크색 젤리 발바닥이 떠올랐다.
‘녀석, 비 오는데 무서워하진 않으려나.’
짧고 굵은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일요일 저녁, 다시 전원주택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며 우리는 기대했다. 평소처럼 밀키가 ‘왔냥?’ 하고 시크하게 마중 나오거나, 자느라 코빼기도 안 비치겠지, 하고.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건 ‘분리불안의 화신’이 된 고양이였다.
“애옹! 애애옹!!! (어디 갔다 이제 왔어!!!)”
밀키는 현관문 소리가 나자마자 튀어나와 혜정이 다리에 매달렸다. 평소의 도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혜정이 껌딱지가 되어 떨어질 줄 모르더니, 혜정이가 앉으면 타깃을 바꿔 준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발목에 몸을 비벼댔다.
가장 큰 문제는 ‘밥’이었다.
“여보, 자동 급식기 사료가 거의 그대로야. 1박 2일 동안 거의 굶은 것 같아.”
혜정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가 밖에서 맛있는 김치찌개에 맥주까지 마시며 하하 호호 웃는 동안, 이 작은 녀석은 낯선 빗소리를 들으며 굶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여행의 즐거움이 죄책감으로 바뀌어 명치를 눌렀다.
그날 저녁,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한바탕 난리를 친 밀키는 거실 구석 자기 방(숨숨집)에 다시 틀어박혔다.
“밀키야~ 밀키?”
답답한 마음에 혜정이가 부르자, 놀랍게도 밀키가 “냐아옹~” 대답하며 냉큼 튀어나왔다.
“어머, 나온다! 밀키야, 이리 와!”
가족 모두 반가워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밀키는 거실 한가운데 딱 멈춰 서더니, 우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다가오라는 손짓에도 꿈쩍하지 않고, 그저 먼발치에서 우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부르면 냉큼 나오면서도 절대 곁은 내주지 않는 저 미묘한 행동. 마치 ‘흥, 나오긴 했는데, 너희들 아직 용서한 건 아니거든?’ 하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즐거운 가족 여행의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판다와 카피바라 인형을 옆에 두고도 시무룩한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더 아팠다.
밀키야, 미안해. 다시는 너 혼자 두고 멀리 안 갈게. 제발 그 거리 좀 좁혀주고 밥 좀 먹어주라, 응?
(제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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