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카테고리 JoyFul Weekend

제3화. 폭풍 전야의 고요, 그리고 복수의 눈빛

작성자 mise2004 · 11월 25, 2025


일요일 오후 2시. 전원주택 거실에 기이한 평화가 찾아왔다.

평소 같으면 “아빠, 놀아줘!”, “형아가 내 거 뺏어갔어!” 하며 돌고래 초음파가 난무했을 시간이건만, 오늘은 절간처럼 고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집의 두 인간 비글, 준이애몽이가 아침 일찍부터 친구들과 강아지 카페로 원정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이고, 내 다리야…”

나는 지금 소파와 완벽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올라 있다. 엊그제 회사 동료들과 다녀온 골프 라운딩이 화근이었다. 평소 숨쉬기 운동만 하던 몸으로 18홀을 걸어 다녔더니, 양쪽 종아리에 알이 꽉 찬 시샤모 두 마리가 들어앉은 기분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어딘가 불편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 때문이다.

시선의 주인은 바로 우리 집 상전, 하얀 털의 터키시 앙고라 ‘밀키’다.

사건은 어제저녁 발생했다. 평소 순하던 밀키가 장난을 치다 첫째 준이의 손등을 ‘앙’ 하고 물어버린 것이다. 준이의 울음소리에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가장의 위엄’ 모드를 발동했다.

“밀키! 안 돼! 형아 물면 어떡해! 이놈!”

평소엔 간식이나 바치던 집사가 갑자기 호랑이처럼 소리를 지르니 녀석도 꽤 놀랐나 보다. 귀를 뒤로 젖히고 구석으로 도망치더니, 그 이후로 완전히 기이 죽어버렸다. 어제부터 밥도 깨작거리고, 불러도 대답 없는 너란 고양이…

지금 밀키는 자기 숨숨집(고양이 집) 입구에 턱을 괴고 엎드려 있다. 세상 다 산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뒷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내가 너무 심하게 혼냈나…’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츄르라도 하나 꺼내 줄까 고민하던 찰나, 아내 ‘혜정이‘가 아이들 픽업 갈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주말에도 쉴 틈 없이 바쁜 우리 집 실세.

“어머, 우리 밀키. 왜 이러고 있어? 아빠가 또 뭐라 그랬어?”

혜정이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밀키의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 숨숨집에서 총알같이 튀어나오더니 혜정이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에옹~’ 하고 세상 불쌍한 울음소리를 낸다. 저 여우 같은 기집애.

혜정이는 그런 밀키를 안아 들고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오구오구, 우리 예쁜이. 어제 아빠한테 혼나서 속상했쪄요? 아빠가 나빴네, 그치?”

아니, 여보. 팩트는 쟤가 아들을 물었다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혜정이 품에 안겨 골골송을 부르던 밀키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봤다.

찌릿.

그건 단순한 시선이 아니었다. 야생 맹수의 눈빛. ‘두고 보자, 이 투블럭 뚱땡이 집사 놈.’이라고 말하는 듯한 살벌한 레이저 눈빛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종아리의 통증도 잊고 소파 깊숙이 몸을 움츠렸다.

“허, 참. 나 원. 고양이가 사람을 째려보네.”

내가 헛웃음을 짓자 밀키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혜정이 품으로 파고든다. 혜정이는 그런 밀키를 쓰다듬으며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당신은 애가(고양이가) 좀 실수할 수도 있지, 그걸 그렇게 무식하게 혼내요? 애 기죽게. 오늘 저녁에 밀키 특식 좀 챙겨줘요. 알았죠?”

…결국 또 내 잘못이다. 나는 소파에 누운 채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현관문 도어록 소리가 들리고 우당탕탕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아빠!!! 우리 왔어!!! 강아지 진짜 많았어! 배고파, 밥 줘!”

집안을 가득 채우는 비글들의 소음. 아, 시끄럽다. 정신 사납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끄러움이 저 고양이의 침묵 시위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나는 아픈 종아리를 부여잡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래,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지. 저 복수의 눈빛을 견디는 것보단.

(제3화 끝)


평가: 4/5

Find Your Favorite Interesting thing!!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You may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