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포스팅 초안]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화면이 암전된 후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류승용 배우가 연기한 김낙수, 우리들의 ‘김 부장’이 남긴 긴 여운 때문이었을 겁니다. 11화라는 짧지 않은 여정 동안 우리는 그를 통해 대한민국 가장들의 민낯을 보았고, 때로는 찌질함에 혀를 차면서도 끝내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드라마의 결말이 남긴 묵직한 질문들, 특히 김낙수의 선택과 인간관계, 그리고 그가 걸어온 길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두 권의 책, <옳은 실패(Right Kind of Wrong)>와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 합니다.
1. 류승용이 그려낸 ‘김낙수’, 그리고 그를 둘러싼 관계의 미학
류승용 배우가 분한 김낙수는 단순히 ‘꼰대’라는 단어로 규정하기엔 너무나 입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과 서울 자가라는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속은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연약한 자아로 가득 차 있었죠.
드라마 내내 김낙수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는 ‘불안’을 매개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성과를 위해 그를 압박하던 임원들, 그를 비웃거나 혹은 동정하던 송 과장과 정 대리 같은 후배들. 이들 사이에서 김낙수는 권위를 지키려 발버둥 쳤지만, 실상 그 권위는 모래성 같았습니다.
하지만 11화 엔딩에 이르러 가장 눈물겨웠던 관계는 역시 아내 ‘박하진’과의 관계였습니다. 김낙수가 회사와 사회에서 깎여나간 자존감을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안아 준 사람. 박하진의 선택 앞에서 김낙수가 보인 반응은 이 드라마가 단순한 오피스 물이 아니라 휴먼 드라마임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장의 무게를 이야기하지만, 김낙수는 그 무게를 권위로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 껍데기를 벗고 ‘인간 김낙수’로서 아내와 마주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의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죠.
2. 휴머니즘인가, 포퓰리즘인가? : 희생의 딜레마
많은 분들이 의문을 표해주셨던 부분, 그리고 저 역시 가슴 한편이 답답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주요 이벤트, 특히 아내 박하진의 선택이 강요되는 결정적인 순간에서 김낙수는 왜 철저하게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을까요?
시청자 입장에서,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직장인 입장에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제발 이번만큼은 당신을 위해 살아, 낙수야!”
하지만 그는 또다시 다수를 위한, 혹은 가족을 위한, 혹은 도의적인 ‘옳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택합니다. 이 모습이 마치 작위적인 권선징악을 위한 장치(포퓰리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지나친 휴머니즘의 강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올바르고 곧은 길을 가는 것, 정말 중요하지만 세상사 어찌 그렇게만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김낙수를 보며 우리 모두가 품은 의문일 것입니다. 현실의 우리는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눈감으며 내 이익을 챙기는 것이 ‘현명함’이라 배우며 살아왔으니까요. 그렇기에 김낙수의 선택은 답답하다 못해 미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과연 그의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3. <옳은 실패>의 관점 : 김낙수의 선택은 실패가 아닌 ‘데이터’였다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의 책 <옳은 실패(Right Kind of Wrong)>의 렌즈를 통해 김낙수를 바라보면, 그의 답답한 행보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실패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상태’로 정의합니다. 승진 누락, 자산 손실, 사람들의 비난… 이런 결과론적 관점에서 김낙수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실패를 ‘현명한 실패(Intelligent Failure)’와 ‘예방 가능한 실패’로 구분합니다.
김낙수가 아내의 선택 앞에서, 혹은 회사에서의 결정적 순간에서 자신을 희생한 것은 단순한 포기나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신념)가 이 척박한 현실에서도 유효한가?”를 확인하기 위한 치열한 실험이자 ‘옳은 실패’였습니다.
그가 만약 그 순간 자신의 이익만을 챙겼다면(즉, 성공했다면), 그는 당장의 부와 안정을 얻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평생 쌓아온 ‘김낙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책의 관점에서 볼 때, 김낙수의 희생은 외부적으로는 손해(실패) 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한 정당한 과정이었습니다. 비록 그 과정이 찌질하고 아팠을지라도, 그는 ‘나답게 사는 법’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꺼이 실패를 자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선택은 미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가장 ‘지능적인 방어’였을지도 모릅니다.
4. <불변의 법칙>의 관점 : 세상사는 변해도 지켜야 할 것은 변하지 않는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은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변하지 않는가?”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100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들이 있습니다. 탐욕, 두려움, 그리고 ‘평판의 복리 효과’와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이죠.
이 책의 관점에서 김낙수가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들을 분석해 볼까요?
- 선택 A (지름길): 눈앞의 이익을 취하고, 남을 밟고 올라선다.
- 결과: 단기적으로는 승리한다. 하지만 인간의 질투와 복수심이라는 ‘불변의 법칙’에 의해 언젠가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무엇보다 ‘밤잠을 설치는 불안’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
- 선택 B (김낙수의 길):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타인을 배려한다.
- 결과: 단기적으로는 ‘호구’ 잡힌다. 답답하다. 하지만 신뢰와 평판이라는 자산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복리’로 쌓인다.
드라마 속 김낙수가 보여준 모습은, 세상이 아무리 급변하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삶”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책에서는 말합니다. “최적의 삶을 살려 하지 말고, 꽤 괜찮은 삶을 살아라.”
완벽하게 이익을 챙기는 ‘최적의 선택(Optimization)’을 하려다 보면 인간성은 파괴됩니다. 김낙수는 비록 최적의 경로는 아니었을지라도, 10년, 20년 뒤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래도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김낙수가 가진 유일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5. 맺음말 : 우리 안의 김낙수에게
방송을 보고 난 뒤, “세상사 어찌 그렇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렇게 살기 힘들기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귀하다.”
김낙수의 삶이 현실에서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이상적(Ideal)이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만큼 원칙과 상식을 지키기 어려운 곳임을 반증합니다.
김낙수가 아내 박하진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희생을 택했을 때 느꼈을 그 복잡 미묘한 감정. 그것은 단순한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옳은 실패’를 감수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가장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변하지 않는 가치’를 믿고 싶은 한 중년 남자의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김낙수처럼 완벽하게 희생하며 살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때로 이기적이고, 때로 비겁할 것입니다. 하지만 류승용 배우가 보여준 김낙수의 마지막 얼굴을 기억하며, 적어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무엇이 나를 덜 부끄럽게 하는가?”를 한 번쯤 고민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비록 그 길이 조금 돌아가는 길이고, 남들보다 조금 더딘 ‘실패’의 길처럼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서울 자가에 살든 아니든, 대기업을 다니든 아니든, 가슴 속에 울고 있는 김낙수 한 명쯤은 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12화까지 함께 울고 웃었던 김낙수 부장님, 그리고 류승용 배우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의 ‘옳은 실패’들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김낙수의 선택이 답답하셨나요, 아니면 위로가 되셨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김낙수’의 선택은 무엇이었을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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