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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외곽의 한적한 전원주택 단지. 남들은 이곳을 ‘도심 속 힐링의 공간’이라 부르지만, 우리 집 대문을 여는 순간 그 낭만적인 환상은 와장창 깨져버린다. 우리 집은 힐링 캠프가 아니라, 매일 아침 전쟁이 벌어지는 최전방이다.

“여보!! 내 파란색 넥타이 못 봤어? 어제 분명히 소파 위에 뒀는데!”

아침 7시. 나의 비명과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처참하다. 나는 ‘김군‘. 40대 후반의 가장이자, 밖에서는 제법 무게 잡는 직장인이지만, 집에서는 넥타이 하나 못 찾아 허둥대는 아저씨일 뿐이다. 늘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이라 우기고 싶지만, 거울 속의 나는 솔직히 말해 좀 ‘통통’하다. 그래도 자존심인 ‘투블럭 2:8 가르마’ 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왁스를 바르며 또 소리를 지른다.

“아, 진짜 넥타이가 발이 달렸나!”

그때, 부엌에서 구세주이자 우리 집의 실질적 지배자인 아내, ‘혜정이‘가 나타난다. 검고 긴 생머리를 질끈 묶고, 오똑한 코에 선한 눈매. 누군가는 그녀를 보고 “어머, 이승기 닮아서 너무 훈훈하다”고 말하곤 한다. 확실히 그녀는 잘생쁨(잘생기고 예쁨)의 정석이다. 하지만 그 훈훈한 얼굴로 그녀가 뱉는 말은 자비가 없다.

“식탁 의자에 걸어뒀다고 세 번 말했거든요? 자기 귀는 장식이야?”

그녀의 차분한 팩트 폭격에 나는 꼬리를 내리고 식탁으로 향한다. 그곳엔 나의 미니미들이 앉아 있다.

첫째 아들 ‘준이‘. 초등학교 4학년. 외모는 나를 쏙 빼다 박아 통통하고 덩치도 큰 녀석이다. 녀석은 시리얼 그릇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나를 보더니 해맑게 웃는다.

“아빠, 굿모닝! 오늘 머리 되게 멋지다. 연예인 같아.”

역시 내 새끼. 준이는 언제나 듣기 좋은 따뜻한 말을 먼저 건넬 줄 안다. 저 녀석의 저런 멘트 때문에 내가 산다. 기분이 좋아져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데, 준이의 손이 툭, 우유 팩을 쳐버렸다.

“어? 우유가… 탈출하네?”

식탁 위로 하얀 우유 강이 흐른다. 아… 준이야. 넌 공부도 곧잘 하면서 왜 이렇게 덤벙대는 거니. 천천히 풀면 다 아는 문제를 덤벙대서 틀려오는 시험지를 볼 때마다 내 속이 터지는 건 비밀이다.

그 옆에는 둘째 ‘애몽이‘가 앉아 있다. 초등학교 2학년. 형과는 정반대로 엄마 체질을 닮아 늘씬하고 입도 짧은 녀석이다. 깨작깨작 밥알을 세고 있는 애몽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엄마, 나 오늘 학교 안 가면 안 돼? 배가 좀 아픈 것 같은데.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쉬는 게 나을 것 같아.”

저 쪼끄만 녀석이 ‘주관적인 판단’이란 단어를 쓴다. 애몽이는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친구들 사이에선 평판 좋은 모범생이라는데, 집에서는 엄마랑 말싸움할 때 논리왕이 된다.

하지만 상대는 ‘혜정이‘다.

“주관적인 판단 기각. 열 없으니까 얼른 밥 먹어. 그리고 너 어제 수학 문제 풀 때 고집부리더니, 오늘 선생님한테 전화 온 거 아니지?”

‘수학’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집안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진다. 혜정이는 평소엔 천사 같지만, 아이들 공부, 특히 수학을 가르칠 때면 다른 사람이 된다. 목소리 톤은 여전히 차분한데, 눈빛에서 레이저가 나온다. 그럴 때면 천방지축인 두 아들도, 심지어 나까지도 숨소리를 죽여야 한다.

아이들을 차에 구겨 넣고 출근하는 길. 백미러로 뒷좌석에서 잠든 두 아들의 얼굴을 본다. 하나는 덤벙대서 걱정, 하나는 너무 예민해서 걱정. 그리고 조수석에서 화장을 고치는 ‘이승기 닮은’ 내 아내는 오늘 저녁엔 또 어떤 ‘교육 모드’로 변신할지 걱정.

부산의 파란 하늘 아래, 우리 가족의 하루는 오늘도 이렇게 시끄럽게, 하지만 묘하게 굴러간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냄새가 아닐까 위안을 삼으며, 나는 엑셀을 밟았다.

“자, 오늘 저녁엔 제발 엄마 화나게 하지 말자, 아들들아. 아빠도 살고 싶다.”

(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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